"정원 80명이 꽉 차 있는데, 입소 신청서를 낸 대기자만 700명입니다. 마침 식사시간이라 어르신들이 식당에 나와 계실 겁니다."

서울 서초구 호젓한 주택가에 위치한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 빌리지'를 찾았다.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서울 한복판,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이 지척이고 삼성전자 연구개발 서울캠퍼스 바로 옆이다. 두 번의 손 소독과 비눗물로 손 씻기, 신속항원 키트 검사를 통한 음성 확인이 끝난 후에야 스르륵 문이 열렸다. 최근 급속한 오미크론 확산세에 출퇴근하는 직원 일부가 확진 판정을 받긴 했지만, 이 시설에 상주하는 고객들 중에서는 확진자가 없을 정도로 '철통 방역'을 자랑하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갔을 때는 '클린존'이라고 써 붙인 엘리베이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감염 우려를 아예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방호복을 입어야만 탑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로, 시설 내 직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 일정 기간 직원들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근무한다. 2년간 외출과 외박, 면회 등이 제한됐지만 보호자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옥상 정원 등을 활용해 외부 활동까지 할 수 있어 부모님들이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이미숙 서초빌리지 원장은 "도심형 요양시설의 최고 장점은 가까운 부모님댁을 찾듯 평일이나 주말 언제든 뵐 수 있다는 것인데 코로나로 제약이 좀 있었다"면서 "자녀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매일 재활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옥상을 산책하는 등 일상을 풍요롭게 해드리기 위해 특히 신경을 썼다"고 했다. 입소자들은 식사 때마다 거실로 나와 앉아서 식사를 한다. 대부분 요양원에서 침대로 배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입소자들을 거실로 모셔오고 다시 모셔다 드리려면 직원들 일이 몇 배가 되지만, 이런 사소한 것에서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서초빌리지에는 '5개 마을'이 있다. 60대 후반부터 90대까지 남녀 어르신들이 유닛(마을)별로 모여 산다. 1인실과 2인실 중 선택할 수 있고, 병환 증세가 비슷한 분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건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정과 옥상정원이 있고, 지하에는 넓은 재활치료실을 갖추고 있다. 방 구조는 물론 건물 인테리어와 동선 하나하나를 어르신들이 생활하기 편하도록 계산해서 맞춤형으로 꾸몄다. 식사는 영양관리 전문기업 아워홈에서 밥과 죽, 미음 등 맞춤형 식단으로 제공한다.

보험사가 운영하는 요양시설은 뭐가 다를까. 요양서비스의 시작이자 끝인 '인력'부터 차이가 났다. 이 원장은 "간호인력과 요양보호사는 물론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을 법정 인력보다 충분히 확보했다"며 "KB금융그룹 계열사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있고 '인간 중심 케어'라는 철학을 공유하다 보니 어르신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남다르다"고 했다. 한 달 거주비가 200만~300만원 선으로 부담되긴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누구나 입소하고 싶을 만큼 깨끗하고 체계적이었다.

KB손해보험은 2015년부터 일본과 전국 요양시설을 돌며 서비스 모델을 고민했다. 현재 위례 1호점과 서초 2호점을 운영 중이고, 은평에서 3호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문을 열 준비 중인 은평점은 서울 강동과 강남 지역에 이어 강서 지역으로 사업장을 확장해 나간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통해 수도권 및 주요 광역시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KB손해보험은 기대하고 있다.

이상욱 KB골든라이프케어 사업개발본부장은 "처음에는 좋은 요양시설을 찾아 KB금융그룹 고객들에게 소개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면서 "전문가들과 고민해 우리나라 맞춤형 유닛 구조를 고안했고, 직원과 보호자, 이용자 의견을 반영해 계속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지금은 지속적으로 시설을 늘리기 위한 투자 과정이라 당장의 손익을 따질 단계는 아니지만, 향후 운영 과정에서 각종 데이터가 쌓이면 KB헬스케어 사업과도 연계하는 등 추가적인 신사업 발굴도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요양시설이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지방 대도시 등 수요가 몰리는 곳의 공급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요양산업에 금융사 등 대기업이 진출한다면 이 같은 공급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노후 보장자산을 판매하는 보험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이 본부장은 "지금도 건강상태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센서 등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를 우리 빌리지에 우선 접목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요양시설이 충분하다면 요양원 연계 보험상품을 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용료가 부담스러운 고객을 위해 부동산과 보험 등으로 자산을 유동화하는 서비스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초빌리지처럼 대기업 도심형 요양시설이 확산되려면 규제 개선이 필수다. 현재는 땅과 건물을 '자가'로 소유해야만 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데, 도심에서는 이 조건이 큰 부담이다. 대출을 받는다 해도 한 곳당 초기비용이 100억원 이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책임임대차와 위탁운영만 허용해도 민간자본이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좋은 요양시설 인프라스트럭처를 확충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로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부여하면 비용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업계는 주장한다.

금융사 등 대기업들이 요양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분위기는 이미 조성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7월 양질의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보험사들의 이 분야 진출을 허용할 뜻을 밝혔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도 업계 의견을 수렴해 당국에 전달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건의하는 등 올해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가 증가하고, 양질의 장기요양서비스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요양서비스 선택폭이 너무 좁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수요 대비 지정 기관 수가 부족하고, 특히 대도시의 경우 수요가 높지만 땅값이나 건축비용이 크다 보니 공급에 한계가 있다. 보험을 비롯한 금융업계에서 진출한다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와 정부는 보고 있다.

생보업계에서는 상속·증여에 강점이 있는 신한라이프가 최초로 요양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다. 신한라이프는 금융위원회 발표 직후인 2021년 8월부터 이 분야를 검토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왔다. KB손해보험, 삼성생명 등 이미 요양시장에 진출해 있는 금융사 사례들을 분석하고 시장 전망까지 마쳤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올해부터 속도를 내어 사업 추진에 필요한 제반사항들을 검토하고 세부 추진 계획을 수립하는 등 구체화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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